빈자의 생각, 부자의 생각

부자는 성과에 의해서 평가받고 보상받기를 좋아하나, 빈자는 자신이 노력한 시간에 따라 보상받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부자는 시장(상대방;고객 또는 고용주)의 만족도에 따라서 보상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부자는 상대방(시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나 빈자는 상대방(시장)의 만족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노력한 지에 따라서 보상을 받아야 하는것이 공평하다고 믿는다.

각자의 믿음 뒤 편에는 이들의 믿음을 지지하는 경제학이있다.

빈자들이 좋아하는 투입한 노동시간에 따라서 대우받아야 한다고 믿는 사고방식을 뒷받침하는 경제학은 노동가치설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재화의 가치는 투입한 노동시간과 노동자의 질적수준에 의해서 결정되어 진다고 믿었다. 예를들면 자동차 값은 투입된 노동자의 시간과 노동자의 수준에 따라서 가격이 결정되어 진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부자들은 노동가치설이 잘못된 믿음이라고 지적한다. 자기 맘대로 삽질(?)해놓고 돈을 내놓라고 하는게 말이되느냐? 엉터리 자동차를 만들어놓고 투입노동시간에 따라서 값을 쳐달라고 하면 말이 되느냐? 그런식이라면 중국집 주인이 맛대가리 없는 자장면을 만들고도 자신의 박사 학위와 만드는데 소요 된 3시간을 이유로 한그릇에 최소 3만원은 받아야 겠다고 하는것과 뭐가 다르느냐는 것이다.

부자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경제학은 칼멩거의 효용가치설이다. 재화의 가치는 소비자의 주관적인 심리적 만족도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재화를 박사가 만들든, 무학이 만들든, 피부가 흰사람이 만들든 검은 사람이 만들든 상관없이 소비자의 만족도에 따라서 가격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슘페터는 가치란 투입된 노동자의 수와 시간에 의해서 결정되어 지기보단(노동가치설) 때때로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몇사람의 혁신적 아이디어에 의해서 결정되어 진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한 사람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10만명의 단순 노동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수 있음을 예로 들어 노동가치설이 맞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누구라도 자신이 어떤 사람의 10만분의 1정도 밖에 능력이 없다고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가치설을 믿느냐? 효용가치설을 믿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과 대응행동이 달라진다. 2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근로자의 성과급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있다.

노동가치설을 믿는 근로자는 시장(고용주)의 만족도와 상관없이 근무시간에 비례해서 월급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이 시장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서 해고라도 당한다면 이는 세상이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분개할 것이다. 그러나 효용가치설을 믿는 근로자는 시장 지향적이어서 자신의 성과와 실적에 따라서 보수가 달라지는 것을 어쩔수없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파트 값의 차별화 현상에 대한 해석도 다를수있다. 노동가치설을 신봉하는 사람은 아파트 값이란 땅 값에다 콘크리트 공사비를 더한 것이 원가이며, 아파트 값이 원가차이 이상 벌어지고 차별화되는 것은 거품이고 교정되어져야 마땅하다고 믿을수 있다. 그러나 효용가치설을 믿는 사람이라면 아파트 값은 제조원가와 상관없이 지역별 아파트마다 소유함으로 얻어지는 소비자의 심리적 만족도(사회적 인정,체면과 위신)가 다를 수 있기에 아파트 값이 제조원가와 상관없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1만원짜리 청바지와 100만원짜리 청바지의 제조원가가 1대100의 비율이 아닌 것과 유사한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늘날 노동가치설은 과학이라기보다 낡은 정치이념에 불과하다. 그러나 노동가치설은 대중의 평등주의 본능에 부합하기에 아직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가란게 자신이 흘린 땀과 상관없고 변덕스런 시장의 만족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엔 누구라도 불안한게 사실이다. 대중들은 임금을 포함한 모든 가격이 변덕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의 만족도에 따라서 결정되어진다는 효용가치설을 받아들이는데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기 쉽다. 그래서 대중들은 반시장적이 되기 쉽다. “도덕주의자들은 시장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서 시장의 도박성과 변덕스러움을 지적하며 불만과 원망만을 토로한다” 라고 헤겔은 지적했다.

노동가치설이 옳다고 믿든 효용가치설이 옳다고 믿든 그것은 각자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만약에 시장경제(자본주의 체제)에서 부자가 되고 싶다면 노동가치설이 아닌 효용가치설로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이 유리하다. 시장경제에서 성공하는 요령은 자신의 기준에 세상(시장)을 맞추는게 아니라 자기가 세상(시장)을 만족시키는데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운전이라고 한다면 자동차 앞 유리에 어떤 믿음체계가 있느냐에 따라서 인생 항로는 달라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믿음체계를 가지는게 필요하다. 만약에 부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부자가 되기에 알맞는 믿음 체계부터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빈자 믿음체계는 그냥 내버려둔채로 단지 돈만 벌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들은 올바른 믿음체계를 갖는것 보다는 부자되는 테크닉만 알 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마치 물살을 거슬러 역방향으로 헤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는 장기간 지속하기 힘들며 부자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의 무의식은 언제나 자신이 진짜 믿고 있는 바를 따르고자 하기 때문이다.

출처: 머니투데이, 브라운스톤(외부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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